산지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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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소개
전시명 :
<2022 선정기획전시> 거름 내는 소리
전시 기간 :
2022-06-09 ~ 2022-08-05
전시 서문 :

기획자의 글 - '거름 내는 소리'

  

죽음이 있기에 새로운 생명이 태어날 수 있다.

생명의 마지막 모습이라 할 수 있는 유기물의 부패는 또 다른 생명을 길러내는 비옥한 거름이 된다. 어쩌면 화산 분출에 의한 섬이라는 제주의 지형 자체가 생성과 소멸의 순환의 고리의 증거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팬데믹과 기후위기 등 개인의 삶과 지구 공동체를 위협하는 이 무시무시한 단어들은 더이상 텍스트로만 존재하는 위험이 아니다. 이러한 위기를 대처하는 방식은 더 나은 것을 위한 또 다른 소비나 생산보다는 자연의 순환고리, 즉 생성과 소멸의 순환에 대한 인식과 성찰에서 시작될 것이다.

거름 내는 소리’, ‘돗통시등 제주 전통에는 이러한 생태 순환 정신이 배어 있다. 이번 전시의 타이틀인 <거름 내는 소리>는 제주 전통 노동요로서 과거 거름을 논밭에 실어 내거나 펼쳐 내면서 부르는 농요의 제목이기도 하다. 동물과 인간의 배설물, 구들의 재, 쌀겨, 깻묵 등 일상의 하찮은 것들은 거름이 되어 토지를 정화한다. 사람들은 노래를 주고 받으며 바지런히 몸을 놀려 땅을 고르고 거름을 만들어 땅으로 돌려보낸다.

전시의 참여작가 박가연, 신예선, 이다슬, 이한나는 주목받지 못하는 하찮은 생명이나 대상에 주목하여 생성하고 소멸하는 일시적 존재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기억하기 위한 작업을 수행한다. 유한한 존재를 애도하며 명주실이나 흙과 같이 자연의 재료를 잠시 빌리고, 그것들로 제작한 작품이 스러져 없어지는 것을 억지로 붙잡아 두거나 과하게 기념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작가의 역할이란 그러한 사라짐과 덧없음을 인정하고, 그것들이 다시 거름으로 돌아가기를 도와주는 것뿐이다수행 속에 들려오는 작가들의 목소리는 거름 내는 소리이다.

죽음과 소멸의 기억과 감각을 포착하고, 생명의 순환을 긍정하는 4명의 작가의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 환경위기의 시대에 우리가 가져야 하는 겸허하고 반성적 태도에 관해 인식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대표 작품 :






작가소개
작가명 :
박가연, 신예선, 이다슬, 이한나
작가연혁 :

● 박가연 - ‘죽음을 통해 생을 바라보고, 생을 통해 죽음을 인식하길 바라는’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을 어릴 적 듣고 경험한 생활양식과 전통문화에서 영감을 얻어 풀어내기 시작했다. 작가는 우리의 식탁에서 흔히 발견되는 생선의 머리나, 냉이, 버섯 등을 사용해 바니타스 정물을 연상시키는 영상과 함께 애도와 죽음에 관한 메시지를 공간으로 확장시키는 설치 작품을 선보인다. 한편 <그림자의 그림자>는 2018년 개인전에 선보였던 작품을 재창안한 작품이다. 회전하는 조명을 통해 여러 오브제를 비추던 작품의 주요 메카닉은 전시 환경에 의한 자연스러운 움직임의 방식으로 대체되었다. 가느다란 낚시줄에 매달린 뱀의 허물은 공기의 움직임에 의해 스스로 움직이고, 자신을 비추는 빛에 의해 그림자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작가는 ‘존재—허물—그림자’의 관계를 통해 삶과 순환에 대한 메시지를 시각화함으로써 ‘죽음을 통해 생을 바라보고, 생을 통해 죽음을 인식하길 바라는’ 기존 주제 의식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 신예선 - 소멸을 상정해 둔 존재의 유한함을 인정하는 것.


비천한 물질은 아름답고, 강인하며 집을 짓는다. 그리고 완전히 소멸된다.

누에가 완전히 새로 태어나기 전 가느다란 실을 토해내 집을 만드는 것처럼 작가는 명주실로 오래된 기둥과 천장을 지지대 삼아 공간을 만든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완전히 없어지는 것을 선망하는 작가의 양가적 감정은 희미하게 실로 얼기설기 교차되어 부드러운 형태로 구획된 공간에서 드러난다. 가느다란 실로 얽힌 그의 작업은 희미하지만 분명히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소멸을 상정해 둔 존재의 유한함을 인정하는 것. 제주의 사람과 공기, 바람을 닮은 그의 작업은 연약하고 유연하지만 명백한 존재감으로 그곳에 위치해 있다. 시간이 지나 작품이 허물어져 내린 모습은 마치 번데기가 변태를 끝내고 새로운 모습으로 날아간 뒤의 고치를 연상하게 한다.


● 이다슬 - “ 종달새 날아오르면 나를 꼬옥 안아주세요.”


작가는 농사를 경험하며 잡초와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작업의 국면을 맞았다. 잡초를 죽이는 것을 멈추고 잡초를 살리는 길을 택한 것이다. 다시 자랄 것을 알면서도 뽑아내야만 하는 잡초를 베어내지 않고 정성껏 기르면서 시작된 천진한 작가의 호기심은 어느덧 두툼한 텍스트와 섬세한 사진 작업이 되었다. 작가는 이야기한다. ‘언제 이 과정을 끝낼 것인가.’ 23년에 불과한 수명의 이름없는 잡초를 키워 나가는 작업 속에서 개인의 욕심을 발견한 탓이다. 그저 그것들을 잘 기르고 보살피고 기록할 뿐인데도 혹시나 잡초의 생명을 억지로 연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작가는 치밀하게 고민하고 반성한다. 우리는 풀 한 포기를 키우면서도 이토록 섬세하게 스스로를 돌아 본 적이 있었던가. 비록 작가의 작업이 우리의 삶의 끈적한 모든 욕망과 닮아 있다 할지라도 다른 것이 있다면 삶의 유한성에 대한 인식이다. 언젠가는 돌려보내야 한다는 것. 언젠가는 끝내야 한다는 것.


● 이한나 - 시간의 흐름에 따라 풍화되고 자연으로 돌아가 한 줌의 흙 덩어리가 된다.


토우는 흙으로 만든 인형으로 과거에 부장품이나 주술적 우상, 또는 장난감으로 사용되었다. 주로 장례 이후 죽은 이에 대한 봉사자라는 의미와 함께 부장하던 토우를 이한나 작가는 폭력에 희생되거나 소외된 존재들을 기억하고 상기시키기 위해 작품으로 불러들였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존재는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처럼 무리하게 작업을 기념화하지는 않는다. 작가가 빚은 토우는 가마에 굽지 않아 일시적으로 어떤 형태를 붙잡고 있을 뿐, 자연과 시간의 순리에 따라 천천히 깎이고 녹아 어느새 사라질 것이다. 추모나 기억의 대상이 된 존재들은 작가의 손을 빌어 잠시 공간에 머문다. 잘 부서지는 연약한 흙으로 만들어진 작품은 그 취약성으로 역설적인 존재감이 드러난다. 형상이 가진 장수와 행복과 같은 기복의 가치와 상징 역시 시간의 흐름에 따라 풍화되고 자연으로 돌아가 한 줌의 흙 덩어리가 된다.